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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예술/나의작업실

나는 어떻게 초상화 작가가 되었는가?

은빛날개2978 2025. 7. 29. 17:02

나는 어려서부터 특히 미술을 좋아했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미술 대회를 나가면 의례히 뽑혀서 미술 대회를 나갔던 기억이 있다.

눈이 많이 오면 눈사람을 만들어, 조각하듯 사람형상을 곧잘 만들기도 했다. "나는 조각가가 되면 좋겠다"라는 희망을 가슴속에 묻어 두었었다.

중학교 미술시간은매우 즐거웠다. 도자기에 아크릴 물감으로 장식용 그림을 그릴 때 미술선생님으로부터 상업적인 작품 같다고 칭찬 같은 소리를 들었었고  패턴을 그리는 수업시간에도 노랑바탕에 어떤 패턴을 그렸는데 지금도 어떤 문양을 그렸는지 생각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집안사정이 어려워 대입검정고시를 패스하고서 미술 하고는 동떨어지게 간호대학을 가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 게 시골의 삶이라는 것이  산업화와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어떤 직업이 돈을 잘 벌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면서 직업의 진로를 정했던 것 같다.

장래희망은 간호사였는데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막연히 "간호사가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품었는데

나의 삶은 어느새 간호사의 길을 밟고 있었다. 간호대학을 나오면서 간호사로 취업을 했고 결혼도 바로 하게 되었다. 남편은 미술학도였고 졸업 후 당시 삼성 <제일 기획> 광고대행사에 취업을 하여 아주 잘 나가는 삼성영업맨이 되었다.

시동생 2명 동서 2명도 미술 전공자 들이다. 집안에 미술 전공자들이 많으니 서울에서의 그 좋은 직업을 정리하고 IMF전부터 우리 부부는 고향에 내려와 미술전공자인 동생과 동업하면서 미술학원을 운영했었다. 입시미술은 시동생이 맡아 지도를 하였다. 초등부는 미술수업 후  각분기마다 미술 전시회를 열어 동네 축제처럼 볼거리를 만들었었고 미술유치부 어린이들에게는 2주에 한 번씩 서울고적이나 지역명소 탐방을 하면서 늘 견학위주의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 동기는 삼성을 다니면서 세계 여러 나라를 탐방했던 남편의 교육관이기도 했고 늘 10인 10색으로 각각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미술학원 이름도 <바람아래미술학원>으로 그 당시 지역에서 입지가 있는 미술교육기관으로 자리했었다. 서서히 미술교육을 바탕으로 남편의 역량하에 시동생이 유명인을 벽전체 큰 초상화를 그리게 되면서 우리 집안의 초상화작가 등단은 시작이 되었다.

집안에 미술 전공자들이 많았기에 시동생으로부터 전수받은 초상화로 생업에 접목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물 초상화 업은 인터넷으로 확장되어 갔다. 우리나라 유수 기업의 회장단들  세계 유명 초청인사도 우리 남편 인터넷 사이트로 주문은 이미 시작되었고 거물은 시동생이 그렸고 일반인 사업가들은 수제자인 나와 동서가 그리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 우리 아이들도 두 명 모두 미술전공자가 되어있었고 집안에 미술 전공자들은 조카들 포함 열명이나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안은 미술집안으로 아침마당에 나가야 한다는 말을 그 시절 많이 했었다.

나는 인터넷으로 인물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고 생전 해보지 않은 기법을 처음 해보면서 한번 두 번 시행착오를 겪고 작업을 시작하면서 세밀한 관찰과 손작업을 하는 내손을 믿게 되었다. 오랜 시간 그림작업에 몰두하면서 길러진 스케치력과

테크닉으로 고객이 만족하는 작품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초상화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인물 초상화작품은 지인기념선물, 조상님의 흐려진 옛 사진 그리기, 가족화, 개인 기념 상패화, 애견 등등 장르도 다양하다.

✨ 초상화 작품에 관심 있으시거나, 맞춤 제작을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아래 메일로 문의하세요.
(※ 개인적인 취미 활동의 일환이며, 정식 판매 목적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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