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과 그에 대한 국가폭력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짓밟히고 찢겼던 인간의 존엄과 목소리를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되살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일한 시점이 아닌 여러 인물의 시선과 기억을 통해 광주의 비극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 소설의 중심에는 열다섯 살 소년 ‘동호’가 있다.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 도청에 들어간다. 도청은 계엄군에 맞서 시민들이 마지막으로 모였던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곧 국가 권력의 총칼 아래 무자비하게 유린당한다. 동호는 시체를 정리하는 일을 돕고, 피로 얼룩진 공간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예의를 지키려 애쓴다. 하지만 곧 체포되고, 고문당하며 목숨을 잃는다. 그의 어린 시신은 또 다른 무명 열사의 자리가 되어, 어딘가에 조용히 묻힌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호의 죽음 이후에도 소설은 계속된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함께 시신을 운구했던 여학생, 연극을 했던 청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는 전사(戰士), 그를 숨겨주려 했던 여성 등—의 삶이 각 장의 화자로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지만, 살아 있는 자로서의 고통을 짊어진 채 살아간다. 동호는 죽었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독자들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며 살아 움직인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단순한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진실을 목격한 자의 고통과 기억의 윤리를 문학으로 끌어올린다. 책의 마지막, ‘나’의 시점은 죽은 자의 목소리로 전환되며, 산 자들을 부른다. 그 부름은 명백하다. “기억하라. 너희가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나는 진짜로 죽는 것이다.”
🕊️2.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 – 그 말의 진실
한강 작가는 이 소설과 인터뷰를 통해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는 종교적 기적이 아니라,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산 자가 비로소 다시 인간다운 삶을 찾게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말은 광주의 희생자들이 단지 희생당한 존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역사적 뿌리이자 도덕적 기준이라는 뜻이다.
⚠️3.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계엄’의 진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는 결코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 시작에는 계엄령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국가 폭력의 진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 1980년 광주의 계엄, 그리고 학살
-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 광주는 계엄군에 의해 고립되었고, 언론은 철저히 봉쇄되었다.
- 시민들은 총을 들지 않은 채 학살당했고, 수많은 시신이 무연고로 처리되었다.
- 군은 이 작전을 ‘폭도 진압’으로 포장했다. 진실은 철저히 왜곡되었다. 나는 80년 5.18 당시 서울 어느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실습생 이었었다. 16세 정도 보이는 학생이 엉덩이 총상을 입고 입원했다. 깊게 파인 엉덩이 총상은 참혹했고, 병실 벽 TV에서는 "유쾌한 오락관"이라는 프로가 깔깔대며 나오고 있었다. 철저히 왜곡된 보도를 하는 언론매체가 야속하기만 했던 그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4. 왜 지금 이 진실이 중요한가?
- 오늘날에도 ‘계엄령’은 헌법에 따라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이다.
- 만약 시민들이 1980년을 잊는다면, 국가 폭력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5. “기억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소년이 온다』는 죽은 자를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를 묻는 소설이다. 동호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지만, 우리가 그를 기억할 때,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된다. 지금 우리가 편하게 누리는 자유는 그 소년이, 그 이름 없는 시민들이 대신 잃었던 것들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제 다시 질문해야 한다.
“그때 죽은 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답은 명확하다. 기억하라. 말하라. 그리고 다시는 잊지 말라.
그것이 산 자로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 6. 2025년, 다시 떠오른 ‘계엄’의 그림자
2025년 대한민국.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혼란, 특정 세력의 강경 발언, 권력기관의 비상대응 계획 등이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며, 국민들은 다시 **‘계엄령’**을 마주했었다.
이는 단순한 음모론이나 허상이 아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실제로 국군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문건이 발견되었으며, 국회의사당 포위, 언론 통제, 인터넷 차단 등의 시나리오까지 포함돼 있었다.
그 후, 문건은 검찰에 송치됐지만 실질적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흐지부지되었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사라져 갔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말처럼,
“기억하지 않으면 죽은 자는 진짜로 죽는다.”
그리고,
“잊어버린 국민은, 같은 고통을 반복하게 된다.”
🕯️7. 왜 지금, 우리는 ‘계엄’을 다시 기억해야 하는가?
- 계엄은 법적 장치다.
헌법 제77조에 따라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군이 국내 치안을 장악할 수 있다. 이 법은 아직도 유효하다. - 통제 가능한 사회는 불의한 정권에게 유혹이다.
언론, 인터넷, SNS는 계엄 하에서 쉽게 차단되거나 통제될 수 있으며, 이는 진실을 은폐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 민주주의는 ‘경계’ 속에서만 유지된다.
국민의 권리는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필요할 때만 쓰는 권리’로 생각할 때, 이미 민주주의는 침식된다. - 국가폭력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광주의 비극은 군홧발 아래 밟힌 평범한 시민의 이야기였다. 지금도 특정 상황에서 권력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 침묵은 동조다.
계엄령의 가능성에 대해 국민이 무관심하거나, “설마 그런 일이 또 생기겠어”라는 태도를 가진다면,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역사를 잊은 셈이다.
🧡8. '소년이 온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나를 기억하니?”
“너는 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니?”
“지금도 너희는 나 없이 안전하다고 믿니?”
『소년이 온다』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문학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묻는 경고이자, 미래를 지키기 위한 신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가 침묵하지 않고, 질문하고, 기억할 때
우리는 또 한 번의 ‘광주’를 막아낼 수 있다.
✅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 광주민주화운동과 계엄령에 관한 책과 다큐를 읽고 보기
- 🧾 관련 법령과 헌법 조항에 대한 관심 갖기
- 🗣️ 계엄령에 대한 공적 논의와 역사 교육 요구하기
- 📌 SNS나 블로그 등에서 꾸준히 기억을 공유하기
- 🗳️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고 감시하기
🔻 계엄은 언제나 가능하다.
🔻 그러나 국민이 기억하고 경계할 때, 그것은 절대 선포될 수 없다.
📌 오늘, 『소년이 온다』를 읽는 우리의 책임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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